
저주, 마약, 바위, 트롤: Dungeon Keeper의 흥망성쇠

만약 여러분이 세상을 정복하려고 혈안이 된 사악한 군주라면 어떨까요? 1997년 Dungeon Keeper는 PC 게임의 벽을 뚫고 플레이어에게 이 유쾌하고 사악한 콘셉트를 선사했습니다. 즉, 갈색 바위와 흙으로 지어진 지하 던전을 채굴하고 몬스터 군대를 키워 역겹도록 즐겁고 파릇파릇한 판타지 세계를 결딴 내는 것이죠.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비디오 게임의 바탕은 이렇고요. Dungeon Keeper는 비디오 게임이 전형적으로 가진 영웅 서사를 영리하게 반전시킨 걸 넘어, 관리 게임의 콘셉트를 완전히 뒤집기도 했습니다. 테마 파크나 병원처럼 잘 굴러가는 인프라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통제받고 싶어하지 않는 하수인 무리와 다퉈야 했습니다. 서로를 싫어하는 거미와 파리, 싸움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는 워록, 자기를 고문하느라 바빠 적에게 고통을 줄 수 없는 어둠의 여왕, 그리고 던전에 침입하려는 영웅만큼 위협적인 까다로운 Horned Reaper까지 말입니다.
Dungeon Keeper의 엉망이고 장난스럽고 놀라운 디자인 덕분에 관리, 전략, 신 게임을 특별하게 조합한 게임 분야에서 지금까지 이 게임을 능가한 게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Dungeon Keeper 제작 이야기가 그만큼 혼란스러운 것도 놀라울 일은 아닐 겁니다.
치명적인 위협, 마약, 불화, 게임계에서 가장 독특한 스튜디오의 쇠퇴와 몰락이 얽힌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Dungeon Keeper가 신 게임의 세상을 정복했지만, 공포 통치는 비극적으로 짧게 끝났습니다. 제작자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여기 소개합니다.
흉악한 디자인
Bullfrog Productions가 개발한 Dungeon Keeper는 원래 공동 설립자인 Peter Molyneux가 1994년 여름 Theme Park 출시 이후에 구상한 것입니다. 교통체증에 갇힌 Molyneux가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본인은 그걸 기억하지 못합니다.
현재 스튜디오인 22 Cans의 사무실에서 Molyneux는 "제가 정말 짜증이 났을 것 같긴 하네요. 교통체증에 갇히면, 모두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다 내면의 악마와 분노가 튀어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영감을 줬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Molyneux가 기억하는 것은 그가 떠올린 일반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나쁜 녀석들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강박이 살짝 있었는데요.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본다고 해 봅시다. 제임스 본드가 날아 들어와 잘못된 버튼이나 뭐를 눌러서 나쁜 녀석들을 파괴하는데, 그러면 이 악당이 평생을 건 작업이 한순간에 사라지죠. 저는 항상 '악당이 고용한 사람들 생각은 아무도 안 하는데 그건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Molyneux 생각에는, 여기서 Dungeon Keeper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플레이어가 악당이 되는 게임을 만든다면, 그 게임은 어떤 모습일까요? 바른 생활 영웅이 들어와도 최고의 보물을 빼앗을 수 없도록 던전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뒤틀기가 되겠죠."

당시 Bullfrog는 뛰어난 3D 그래픽 엔진을 자랑하는 1인칭 비행 게임 Magic Carpet 작업을 막 마친 때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Magic Carpet의 프로그래머 Simon Carter는 Dungeon Keeper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Magic Carpet과 마찬가지로 1인칭 시점의 게임이었습니다.
Molyneux는 "우리는 다양한 크리처를 지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꽤 빨리 떠올렸고, 그 후 터널로 방을 만드는 생각이 나왔습니다. 당시의 Bullfrog와 이후 Lionhead에서의 모든 프로젝트가 그랬습니다. 앉아서 디자인 문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아, 이거 이런 게임인데' 하면서 시작하는 거죠. 어쩌면 매우 전문성이 떨어지는 작업 방식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걸 발견하고 탐색하고 싶다면 상당히 유용한 기법입니다."라고 말합니다.
Dungeon Keeper의 프로토타입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1995년 초,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Molyneux는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Bullfrog가 Electronic Arts에 인수되고, Molyneux는 퍼블리셔의 부사장 겸 유럽 총괄이 되었습니다. 뒤이어, EA는 Molyneux에게 다음 분기에 출시할 게임이 하나도 없다고 하며 Dungeon Keeper를 6주 후에 출시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Molyneux는 "그럴 수는 없다고 했죠. 알파 단계도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Hi-Octane이라는 이름의 게임 전체를 쓰는 계약을 중개했고, Sean [Cooper]가 6주만에 완성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기억하기로, Cooper는 이 작업 기간을 8주라고 언급했습니다.)
Molyneux는 이 프로젝트와 EA의 부사장 직무를 맡으며 1995년까지 Dungeon Keeper에서 멀어졌습니다. Molyneux의 부재로, Dungeon Keeper 프로젝트는 Simon Carter와 그의 형제 Dene Carter, 프로그래머인 Jonty Barnes와 Alex Peters, 그리고 Magic Carpet 개발 기간에 Bullfrog에 합류한 수석 아티스트 Mark Healey가 주도했습니다.
Healey는 "제가 해야 했던 첫 번째 일은 저글링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사무실 모두가 그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루 중 어느 시점에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야구 방망이를 들고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복도를 질주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괴짜들이 꽤 많았어요."라고 말합니다.

Healey는 Dungeon Keeper 그래픽의 거의 전부를 디자인했는데, 게임의 독특한 미학은 두 가지 주요 시각 디자인 결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먼저, Healey는 단순히 이 월드 지오메트리 위에 질감을 칠하는 대신, 3D로 모델링한 다음 렌더링하여 텍스처를 만들었습니다. Healey는 "평면에 불과하다곤 해도 실제보다 더 많은 폴리곤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Dungeon Keeper의 엔진 디자이너 Glenn Corpes를 설득해 그래픽 렌더러에 월드 지오메트리를 왜곡하는 '흔들림'을 추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큐브로 늘어선 기둥 대신 실제로 이상하고 무작위적인 비틀거림이 생긴 겁니다."라고 Healey가 설명합니다.
Healey는 게임 캐릭터 대부분을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던전에서 키우는 크리처와 플레이어가 맞서 싸우는 영웅 모두를 말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콘셉트는 Bullfrog 내 여러 장소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Healey는 "Peter가 원하는 특정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Imp는 작은 일꾼이라는 콘셉트가 있었고, 연구를 하는 일종의 마법사를 넣을 예정이었습니다. White Dwarf 잡지를 보며 Games Workshop 스타일의 드워프와 바바리안에 대한 영감을 얻으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합니다.

Healey의 독자적인 콘셉트로는 Dark Mistress(다른 크리처와 자기 자신을 고문하며 즐거움을 얻는 가죽옷 입은 사도마조히스트)와 Horned Reaper 등이 있었습니다. "자기 크리처는 물론 모든 걸 싫어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어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었죠." Horned Reaper는 Healey의 전 여자친구에게서 대략적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미소 같은 거요."라고 합니다.
하우스키핑
1995년 내내 Dungeon Keeper 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었지만, 크리스마스 무렵에도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Healey는 "게임이라고 할 게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보기 좋게 만들려고만 했는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복도에 파이어볼을 쏘는 것뿐이었죠."라고 말합니다.
1996년, Molyneux가 프로젝트에 돌아왔습니다. 게임 디자인에 대한 그리움과 EA의 임원직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고 난 그는 부사장직을 사임했고, 결국 EA에서 완전히 나왔습니다. 하지만 Molyneux는 Dungeon Keeper 작업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EA를 설득했죠. EA는 동의했지만, 특정한 조건을 두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의 성격은 아직까지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Healey는 "Peter는 Dungeon Keeper 작업 중간부터 이미 사무실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회사에서는 그가 사무실에 오지 않길 바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Molyneux는 이 상황이 그렇게 험악하진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Electronic Arts에 사직서를 냈으니, 스튜디오 안에서 제가 돌아다니면서 방해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할 만하죠. 그래서 저는 Dungeon Keeper가 완성될 때까지 떠나지 않을 건데, 개발팀을 저의 집으로 데려와서 게임을 완성하면 어떨지 물었던 겁니다."

하지만 일이 잘 진행되어 EA가 Molyneux의 제안을 수락했고, Healey, Carter 형제, Alex Peters를 포함한 Dungeon Keeper의 핵심 디자인 팀 전원은 Molyneux의 집 방 한 칸으로 작업실을 옮겼습니다.
Healey는 "[Peter]는 당시 집이 좋았고 마당도 좋아서, 점심시간이면 밖에 나가 나무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일부 디자이너에게는 임시 거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Molyneux는 "Simon Carter는 저의 집에서 꽤 오래, 사실 몇 년을 지금의 아내와 함께 머물렀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Dungeon Keeper의 디자인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Molyneux의 복귀는 분명히 영향을 줬습니다. Healey는 "그는 이제 제대로 된 게임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시점에 Dungeon Keeper는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되었습니다. Molyneux는 "우리는 작은 테스트 베드를 만들어 게임을 2D로 플레이해 보았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작업이 필요한 기능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기능을 안정적이고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되면 3D 게임 엔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때 티격태격 다투고 싸우는 독특한 크리처 행동과 같은 Dungeon Keeper의 상징적인 메커니즘이 공식화되었습니다.
Molyneux는 "말하자면, 확정된 디자인이 없는 것의 힘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크리처에 개성을 부여하면 어떨까? 어차피 사악한 크리처인데! 성질이 나빠도 되지 않겠어?' 같은 말을 하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이 시기에 나온 다른 아이디어에는 Imp가 파는 타일을 강조하는 기능, 크리처를 때려서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기능 등이 있었는데, 후자는 Healey의 작품이었습니다. "손은 아마 이미 있었을 겁니다. 그 손으로 물건을 가리키죠.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얘들을 철썩 때려서 더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면 멋지지 않나?' 바로 넣어봤죠. 아주 괜찮더라고요."
Molyneux의 복귀와 작업 환경 전환 외에도, Dungeon Keeper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다른 것도 있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Healey는 부상으로 고생하며 자가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허리 디스크가 생겼어요. Dungeon Keeper를 만드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걸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대마초를 계속 피워댔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고, 아마 그래픽에 큰 영향을 줬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Dungeon Keeper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특이한 약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Molyneux는 "저는 특별한 재료를 넣은 칠리를 만드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완전히 합법적인 재료는 아니고요. 이 칠리를 만들어 집에서 파티를 열고 Electronic Arts의 고위 임원진을 초대했죠. 안타깝게도, 제가 (일종의 블록 형태였던) 이 재료를 강판에 갈고 있었는데 한 임원이 '오, 칠리네요!' 하더니 갈린 재료를 한 숟가락 듬뿍 퍼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상태가 안 좋아졌죠."라고 회상합니다.
Healey도 Molyneux의 특별 칠리를 기억합니다. 그는 "큰 혼란이 초래됐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해방된 크리처
Molyneux는 Dungeon Keeper의 출시를 앞둔 시기를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시기'라고 표현합니다. 개발팀은 게임을 완성하기 위해 야근을 거듭했습니다. 90년대에는 그게 일상적인 관행이었죠.
Molyneux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일했어요. 집에서 일하는 게 더 편했습니다. 출퇴근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그는 Bullfrog 이후의 삶에 관해서도 생각하며 (훗날 Google DeepMind의 공동 설립자가 된) Demis Hassabis와 Lionhead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Black & White가 어떻게 될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 무렵 Molyneux는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군가 찾아와서 산탄총으로 저를 쏴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자는 그 주말에 찾아와서 우리를 죽이겠다는 협박 편지를 저와 모든 잡지에 보냈어요. 경찰은 연락을 받고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그 이름을 가진 누군가를 찾아냈고 그는 산탄총을 소지했지만, 실제로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행히, 위협은 거기에서 그쳤습니다. Molyneux는 이전에 그자와 편지로 연락을 했었다며 "저는 항상 사람들의 커리어를 돕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 몇 통에 답장을 했어요. 그 후 그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Molyneux는 그 협박이 연락을 멈춘 것에 대한 그자의 보복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이게 그 남자가 '나랑 더 연락하지 않는다고? 좋아, 널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합니다.

Healey도 Dungeon Keeper의 격렬한 시기가 끝나던 단계와 그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그만두던 순간을 기억하며 "우리는 꽤 많이 일했고, 상당히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Peter는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저는 말 그대로 이 방 코너에 있는 제 책상에 앉아 마지막 작은 작업을 마쳤습니다. 약간 과장되게 움직이면서 몸을 뒤로 기대 앉아 신문을 들고 '끝났다!' 했던 걸 기억합니다. 그게 Peter를 열받게 했어요. 그는 슬리퍼를 제 쪽으로 던졌죠."라고 설명합니다.
던전의 주인
Dungeon Keeper는 출시와 동시에 극찬을 받으며 놀라운 인기를 얻었습니다. 2003년까지 70만 장을 판매할 정도로 판매량도 호조를 보였습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Theme Park만큼은 아니었지만, EA가 후속편을 허가할 만큼 잘 팔렸습니다.
하지만 Dungeon Keeper 2를 디자인하게 될 팀은 매우 달랐습니다. Molyneux가 떠나고, 회사의 디자이너 중 Healey를 비롯한 여럿이 그를 따라 Lionhead에 합류했습니다. Dungeon Keeper의 핵심 디자인 팀 중 Alex Peters만이 Bullfrog에 남았고, 엔진 프로그래머 Martin Bell도 잔류를 택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Dungeon Keeper 2가 Bullfrog 정신 없이 만들어졌다는 건 아닙니다. 오리지널 Dungeon Keeper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던 수많은 Bullfrog 디자이너가 후속편 작업에 뛰어들었고, 그중에는 수석 디자이너를 맡은 Hi-Octane의 Sean Cooper도 있었습니다. 한편 Dungeon Keeper 2의 수석 프로듀서는 Nick Goldsworthy였는데, Syndicate 시절부터 Bullfrog와 긴밀히 협업해 왔던 사람입니다.
Goldsworthy는 "Bullfrog가 EA에 통합되었을 때, Populous 3 초기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Dungeon Keeper 2 팀이 구성되기 시작하자마자 제 마음이 더 끌리는 걸 거부할 수 없었고, 그 프로젝트에 꽤 빨리 뛰어들었죠."라고 말합니다.

Bullfrog는 속편에서 Dungeon Keeper의 핵심 콘셉트를 너무 많이 손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개발팀은 게임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시작은 비주얼이었습니다. Dungeon Keeper의 그래픽은 프로젝트 초기에는 최첨단이었지만, 진짜 3D와 3D 가속이 등장한 1997년에는 시대에 뒤처진 비주얼이었습니다.
Goldsworthy는 "던전 환경 전체와 던전 속 캐릭터를 3D로 렌더링할 수 있는 커스텀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3D 모델링, 리깅, 애니메이션 등을 맡을 인력을 영입해서 팀이 훨씬 커졌죠."라고 말합니다.
Bullfrog는 UI도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했습니다. Goldsworthy는 "원작의 UI가 다소 복잡하고 직관적이지 않다는 플레이어들이 있었어요."라고 말합니다.
플레이어들만이 아니라 Molyneux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Molyneux는 "Dungeon Keeper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게 인터페이스예요. 아이콘 등등이 너무 많고 메뉴도 가지가지 뜨죠. 너무 지저분해서 '그래, Black & White에는 HUD를 아예 안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Bullfrog는 게임의 핵심에 거의 손대지 않았지만, Dungeon Keeper 2에서는 크리처가 '방황하거나 중요한 일을 방치하지' 않도록 크리처 행동 양식을 다소 수정했습니다. 또한 Bullfrog 디자이너들은 게임을 관통하는 핵심 루프의 다양성을 높였습니다. Goldsworthy는 "원작은 환상적이긴 하지만, 약간 반복적이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Dungeon Keeper 2 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Bullfrog 자체였습니다. Goldsworthy는 "Bullfrog는 놀라운 게임을 만든다는 평판이 자자했죠. EA의 접근법은 좀 더 상업적이어서, 때때로 성장통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EA는 Bullfrog의 실험 정신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핵심 R&D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진할 자유가 있었고, 실패는 과정의 일환으로 여겨졌습니다." Goldsworthy의 설명입니다. 한편, EA는 조직 구조 개선을 위해 전담 프로젝트 매니저를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전혀 다른 업계에서 온 분인데, 그분이 가져온 마일스톤 중심 체계가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습니다."
낙담
1999년 6월에 출시된 Dungeon Keeper 2는 전작과 비슷한 극찬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판매량은 알기 힘들지만, Dungeon Keeper 3 티저 트레일러가 디스크에 담겨서 출하된 것을 볼 때 Bullfrog와 EA가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김칫국을 마신 셈입니다. 당시 Bullfrog는 진심으로 Dungeon Keeper 3를 제작할 계획이었을뿐더러 Dungeon Keeper 2보다 훨씬 야심 찬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지하 굴에서 지상 세계로 나와서 던전 말고 성다운 성을 지을 수 있는 게임이 될 예정이었죠.
Goldsworthy는 "그때쯤 워크래프트 3 트레일러를 본 기억이 나요. 정말 굉장했죠. 거기서 세 번째 종족인 Elder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까지 했어요. 약간 나이트 엘프 느낌이 나는 종족이었죠."라고 말합니다.

Dungeon Keeper 3 팀은 더 정교한 식민지 시뮬레이션을 구축할 계획으로 Adobe Flash를 활용해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했습니다. Goldsworthy는 "디자인 측면에서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성벽을 세우거나 숲, 삼림, 굴과 상호 작용하는 데 Imp의 자율 메커니즘을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가능성은 차고 넘쳤지만, 아쉽게도 발전해서 구체화되지 못한 아이디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Dungeon Keeper 3 개발은 거의 구상 단계에 머물렀으며 2000년 8월에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취소됐습니다. 취소된 이유는 냉정히 말해서 돈 때문이었습니다.
Goldsworthy는 "EA는 해리 포터 게임 등 대규모 타이틀에 인력을 집중하기로 했어요. 많은 팀원이 부서를 옮겼죠. 이 프로젝트에 열정을 쏟았던 저희로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EA로서는 전략적으로 옳은 결정이었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전설
Dungeon Keeper 3 개발이 취소된 후, Bullfrog는 게임을 두 개 더 제작했습니다. 바로 Theme Park World와 Theme Park Inc.입니다. 하지만 후자를 내놓을 당시에 Bullfrog는 회사라기보다는 브랜드 이름에 가까웠습니다. Bullfrog 개발자 대다수가 EA 영국 지사로 흡수됐기 때문이죠.
Dungeon Keeper 시리즈는 혁신적이었고 두루 호평받았지만 이 년여 만에 전성기가 끝났고, 2014년에 출시된 모바일 게임을 제외하면 후속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작진 중 일부는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있었습니다.
Goldsworthy는 "이 시리즈를 다시 작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정신적 후속작 그 이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진짜 사악한 던전 존재가 된다는 콘셉트를 더욱 밀고 나가서 선과 악의 대비를 훨씬 선명하게 조명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원작의 디자이너들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Dungeon Keeper의 혼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Kalypso Media의 Dungeons 시리즈부터 Dungeon Keeper 내레이터를 맡은 Richard Ridings 성우를 섭외한 또 다른 악의 군주 시뮬레이션 게임인 2015년 작 War for the Overworld까지, 수많은 게임이 차기 Dungeon Keeper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Dungeon Keeper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수한 게임에 차용되었으며, Dungeon Keeper의 관리 시스템을 많이 계승한 Molyneux의 Black & White가 대표적입니다.
Molyneux는 자신의 새 프로젝트인 Masters of Albion도 Dungeon Keeper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Dungeon Keeper 속 영웅들이 용의 심장을 파괴하기 위해 나섰다면, Masters of Albion 속 적들은 마을 묘지에 보관된 보물을 찾아 밤중에 Albion을 헤맵니다.
Molyneux는 Masters of Albion의 빙의 메커니즘이 게임플레이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라며 "Dungeon Keeper에서도 Fly나 Imp 같은 크리처에게 빙의할 수는 있었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기믹에 가까웠죠. 빙의라는 메커니즘을 꼭 다시 넣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게임과 동떨어진 기능이 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Masters of Albion에 영감을 준 작품은 Dungeon Keeper만이 아닙니다. Fable과 Black & White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Molyneux는 Masters of Albion에 대한 기대감을 도무지 감추지 못했습니다.
Molyneux는 "기대가 무진장 큽니다. Dungeon Keeper, Black & White, Fable을 즐겼던 사람들이 Masters of Albion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설칠 정도예요. 이 일을 계속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거든요. 혼, 애정, 열정, 모든 것을 이 게임에 쏟아붓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Dungeon Keeper 개발 과정에 살해 협박을 받고 EA와 갈등하고 Bullfrog에서 퇴사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Molyneux는 현재 Dungeon Keepe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Molyneux는 "Dungeon Keeper는 제가 세 번째로 가장 좋아하는 게임입니다. 첫 번째는 Black & White, 두 번째는 Fable, 세 번째가 Dungeon Keeper죠."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Dungeon Keeper와 Dungeon Keeper 2는 Epic Games Store에서 지금 이용 가능합니다.